2016년 11월 20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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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Date
2016-11-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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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 감사주일

감사절 메시지
신명기 26:1-10

곽건용 목사

감사절을 맞는 엇갈린 감정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저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을 때마다 두 가지 엇갈리는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는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1년 동안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널리 알려진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분노입니다. 미국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추수감사절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건너온 건국의 조상들이 갖은 난관을 겪은 끝에 농사를 지어 첫 추수를 한 후 원주민들을 축제의 자리에 초청해서 평화롭게 잔치를 벌인 데 기원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낸 거짓 신화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한 약속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계속해서 원주민들을 변방으로 몰아냈고 결국 대부분을 학살했습니다. 실상이 이렇기 때문에 오늘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 매우 불편합니다. 저는 그렇게 학살당한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사죄하는 의미에서 1854년에 두와미쉬(Duwamish) 부족 시애틀 추장이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 구석구석이 모두 거룩합니다. 우리들의 기억과 체험 속에서는 반짝이는 솔 이파리 모두가, 모래가 수놓아진 바닷가 전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 속의 안개 전체가, 자유롭게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모든 곤충이 거룩합니다. 나무들 속에서 순환하는 수액이 붉은 피부를 띤 우리네 기억을 실어 나릅니다……. 이 땅은 우리들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부이고 이것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향내 나는 꽃들은 우리의 자매들이고, 사슴과 말, 커다란 독수리,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형제들입니다. 바위투성이인 여러 산꼭대기와 풀밭의 에너지와 조랑말의 체온 그리고 인간 ― 이 모두가 동일한 한 가족에 속합니다…….
개울과 강들을 흘러가는 반짝이는 물은 단순히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입니다……. 이 땅이 거룩하다는 것을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어야만 합니다. 호수들의 맑은 물에 비춰지는 신령스런 영상 하나하나는 내 동족의 삶의 역사에 담긴 사건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준다는 것을. 물들의 속삭임은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는 목소리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유럽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에 의해 학살당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평안한 안식을 빕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은?

오늘 아침에 <그것이 알고 싶다> ‘대통령의 씨크릿’ 편을 봤습니다. 거기에 현 대통령이 취임했던 때 많이 통용되는 단어들과 지금 널리 통용되는 단어들을 비교한 빅 데이터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4년 전에는 ‘희망’이란 ‘신뢰’ 같은 말들이 많이 통용됐는데 반해서 지금은 ‘분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지난 4년 동안 우리 고국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뭔지 빅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단어들이 교회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이란 단어가 그 중 하나일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말을 많이 쓰지만 그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이란 말을 사용해도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달라서 얘기가 평행선을 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로 사랑을 재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했으니 사랑을 재면 오히려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요즘은 좋은 측정도구들이 많아서 재지 못할 게 없습니다. 아주 작은 것도 잴 수 있고 반대로 엄청나게 큰 것도 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계와 도구가 좋아도 세상에는 잴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우주가 얼마나 큰지를 어떻게 재겠습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잴 수 없습니다.

사랑이 뭘까요?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아무 대가 없이 남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단순하게 정의해보겠습니다. 짧지만 이 정의에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 대가 없이 남에게 주는 것이라 했으니 사랑은 순수한 의미에서 ‘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가 이만큼 줬으니 저 사람도 이만큼 내게 주겠지.’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대가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선물’입니다.

선물

선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고받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뭔가를 받았을 때 내가 받은 것에 상응하는 뭔가를 그 사람에게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고가는 선물 속에 관계가 돈독해지고 따뜻한 정이 쌓이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최순실와 박근혜에게 돈을 갖다 바친 한국의 재벌들이 한 짓은 주보받는 소박한 의미의 ‘선물’은 아닙니다. 그것은 ‘뇌물’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선물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정을 나눌 목적으로 주고받는, 좋은 의미에서의 선물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 선물은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주는 선물입니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고 그 다음에는 잊어버리는 선물입니다.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선물에 대해서 한 말이 있더군요. 데리다 같은 현대 철학자가 ‘선물’에 대한 글을 썼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데리다는 선물 뿐 아니라 ‘환대’나 ‘용서’ 등에 대해서도 글을 썼더군요. 좌우간 그는 선물에 대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선물이 존재하려면 어떤 상호관계, 반환, 교환, 대응선물, 부채의식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만약 타인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내게 다시 돌려주거나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또 반드시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면 나와 타인 사이에는 어떤 선물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런 반환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든, 아니면 상당히 긴 유예조건들을 계산하여 이루어지든 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선물은 받은 것 또는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금 얘기한 두 번째 경우의 선물이 바로 이것이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성격의 선물을 주고받을 때가 가끔은 있습니다. 하지만 받은 것에 대해 부채의식을 갖거나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물을 받으면 부채의식이나 부담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받은 선물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그런 것은 선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선물은 남에게 주고 돌려받지 않는 것일 뿐 아니라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도 느끼지 않아야 하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하느님께 커다란 은총을 받았으므로 어떻게든 그 은총에 보답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는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나 은총에 대해 감사하고 무엇으로든 보답하려 하는 것은 구원과 은총을 선물이 아닌 걸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선물에 대한 데리다의 얘기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데리다가 말한 것 같이 되갚을 수도 없고 심지어 부채의식을 느낄 수조차 없는,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없는 선물을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받았고 또 계속해서 받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일뿐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되갚을 수 없고 감사한다는 감정이나 말조차도 송구스러워지는 그런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말 한 마디의 힘

몇 년 전에 얘기한 적이 있는 일화인데 감사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 얘기가 떠오릅니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 부근에 국수집을 하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대단할 것 없는 국수 한 그릇이지만 손님이 먹는 걸 보고 양이 적다 싶으면 그릇을 가져다가 넉넉하게 더 담아주는 분이었습니다. 국수 대금은 통을 하나 선반에 놓아두고 손님들이 알아서 돈을 그 통에 넣고 거스름돈까지 알아서 가져가는 그런 식당이었답니다. 주인 할머니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식당이 주변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국수집 얘기가 방송을 탔는데 방송 다음날 어떤 사람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서 외치더랍니다. 그는 그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바뀐 사람이라는 겁니다. PD가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긴 사연을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고 아내까지 떠나 버려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져 술로 세월을 보내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일단 밥을 먹고 사정해 보려 했지만 밥을 얻어먹기는커녕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답니다. 대부분은 문전박대를 했고 소금을 뿌린 집도 있었으며 어떤 집은 개를 풀겠다고 위협하고 진짜 살벌한 집은 우락부락한 주인이 그를 길거리로 집어던져 버렸답니다. 처음엔 서글픈 마음으로 밥 한 술 얻어먹으러 나섰지만 나중엔 오기가 생겨 용산역 인근 식당을 일일이 다 들어가 보고 몽땅 그렇게 그를 박대하면 밤에 모두 휘발유 뿌리고 불 질러 버릴 생각까지 했답니다.

그러다 할머니네 국수집까지 갔습니다. 쭈뼛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는 자기 몰골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면서 앉으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리고는 국수를 말아 주어 허겁지겁 국수를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그릇을 뺏더니 다시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주시더라는 거죠. 다 먹은 다음에야 걱정이 시작했습니다. 본래는 돈 없으니 배 째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이 할머니에게는 차마 그 짓은 못 하겠더라는 거죠. 그래서 그는 말없이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국수 먹고 차린 기운으로 열심히 도망을 쳤답니다. 한참 멀리 도망쳐서 숨을 돌린 후에 비로소 할머니의 외침이 머릿속에 들어왔답니다. 테이블을 걷어차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가던 그의 뒷전에 날린 할머니의 외침은 이것이었답니다. “괜찮아! 그냥 가도 돼! 뛰지 말아!! 다쳐요.”

“어디 가? 거기 서! 돈 내놔!” 정도로 흘려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외침을 자기가 다칠까봐 안타까워 외친 외침이더랍니다. 할머니는 자기가 돈을 내지 못할 걸 알고도 친절하게 그를 맞아 주었고 국수 한 그릇 더 퍼주면서 웃어주었고 그가 배은망덕하게도 말 한 마디 없이 도망갈 때도 뛰지 말라고 외쳐 준 것입니다. 그날 그 아저씨는 용산역 앞으로 돌아가서 몇 시간 동안 펑펑 울었답니다. 자신을 속이기만 해 왔던 세상과 세상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버렸던 아내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음장 같은 냉대 속에 숨이 막혀가던 자기에게 그 할머니의 말 한 마디는 따스한 한 조각의 불씨였다는 겁니다.

그는 다음 날 냉대를 무릅쓰고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파라과이로 단신 이민을 떠났고 거기서 죽을 힘 다해 살아냈고 15년이 지난 후 파라과이에서 꽤 큰 사업을 하는 성공을 이루었답니다. 실로 오랜만에 고국에 들어와서 TV에서 그 할머니를 봤다는 것이지요.

저는 설교 서두에 시애틀 추장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는 자기들이 살아온 땅 구석구석이 거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대가 없이 주어진 조물주의 선물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온 땅을 거룩한 선물로 주신 조물주와 국수집 주인 할머니는 같은 선물을 주신 분입니다. 하느님과 국수집 할머니가 준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일방적으로 준 선물입니다. 데리다가 말한 바로 그 선물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진정한 선물을 우리 모두에게 주십니다. 감사절은 이와 같은 하느님과 이웃에게서 받은 선물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Happy Thanksgiving! ♣